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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법무법인 서울 조기제 변호사】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20여 년 전 경험이 머릿속을 스치며 어제 일처럼 뚜렷해진다. 20여 년 전 7월 어느 날, 필자가 초임 검사로 재직하던 제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나라 여름이 원래 덥고 습한 법이지만 육지에서 내려온 필자에게 섬나라 제주는 열대(熱帶)의 이국(異國)이었다.
당시는 공공기관의 냉방이 지금만큼 여유롭지 않던 때라 하루에 몇 시간만 에어컨이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날은 당직이라서 수사지휘를 맡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오니 책상에 변사사건 기록이 올라와 있었다.
초임 검사라 모든 변사사건은 직접 검시(檢視)를 하던 때라 기록도 보지 않은 채 실무관에게 직접 검시를 갈 테니 배차를 신청하도록 했다. 계장과 함께 승용차를 탔다. 승용차의 쿰쿰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해양경찰서 주차장이었다.
변사체는 병원 영안실에 보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당연히 병원 영안실 앞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해양경찰서였다. 계장이 담당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장은 제주 사투리로 통화를 했고 통화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계장님 뭐라고 하는데요?’ ‘사무실로 올라오라는데요.’ 계장은 멋쩍어하며 대답했다.
주차장에서 내려 이삼십 미터를 걸어가는데 온통 하얀 땡볕이었고 땀이 쏟아졌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해양경찰서 중앙 현관을 막 들어섰을 무렵 담당 경찰이 잰걸음으로 우리를 맞아 사무실로 안내했다.
담당 경찰은 사무실 작은 원탁 테이블에 우리를 앉혀 놓고 사무실 구석에 있던 냉장고로 향했다.
문짝 두 개, 130ℓ, 가정용 백색 냉장고였다. 상단 냉동실 문을 열고 비닐봉지에 싼 무언가를 꺼내 두 손으로 고이 들고 왔다. 아이스크림인가 과일인가 싶었다.
담당 경찰이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며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내가 사양하는 말을 꺼내려고 할 때 담당 경찰이 비닐봉지를 펼쳤다. 속으로 ‘읍’하고 신음을 삼켰다.
‘검사님, 발인데요.’
바다와 관련된 사건은 해양경찰 담당이다.
기준이 좀 모호한 면이 있지만 그랬다. 함덕 해안가 용천수지대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용천수지대는 주로 해안가 땅속에서 지하수가 솟는 곳이라 수온이 낮다. 며칠쯤 지났는지 모르지만, 전혀 부패하지 않았고 냄새도 없었다.
왼쪽 발이었다.
“검사님 여기 좀 보세요. 발목 관절만 쏙 뽑아낸 것 같지요? 범인이 의사일까요? 상처도 없이 쏙 뽑아냈어요. 야, 진짜 특이하네.”
정말 그랬다. 245밀리 정도, 비교적 작은 발이다. 물속에서 발견되었는데 불지도 않았다. 백자처럼 하얗다.
우리 세 사람은 앞에 놓인 발을 놓고 이런저런 추측을 쏟아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사체를 보존하여 변사자의 신원을 규명하라.’라는 상투적인 문구만 남긴 채 그날은 경찰서를 떠났다.
계절이 바뀌었고 그 뜨거운 여름날의 황당한 기억은 곧 증발하여 사라졌다. 초겨울로 접어든 11월 말 서귀포에서 살인으로 의심되는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처음부터 동거하던 친구를 의심했으나 시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시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혐의자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
경찰은 여러 차례 집을 수색했다. 벽지와 장판은 깨끗했다.
그런데 장판을 들추자 갈라진 틈새에서 말라붙은 검붉은 딱지가 발견되었다. 루미놀 검사를 하자 깨끗해 보이던 벽과 바닥에서 온통 푸른빛 혈흔반응이 나왔다. 친구는 피해자가 넘어져서 피를 흘린 적이 있다고 변명했다.
시체를 찾지 못하면 어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며칠째 집을 수색했다. 드디어 재래식 화장실 분뇨통에서 피해자의 유골 일부가 발견되었고 결국 친구는 살인을 자백했다. 그리고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불었다.
의심을 피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면서 외돌개와 섭지코지 등 바다와 접하고 있는 관광지 바다로 시신을 투척했다고 한다. 관광지 절벽 여러 곳에서 피해자의 유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찰이 정말 고생했다. 피의자가 구속된 지 10일만 에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고 필자에게 배당되었다. 늦은 밤까지 기록을 검토했다. 코끝이 찡했다.
피해자에게 미안했는지, 아니면 고생한 경찰에게 고마웠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뜨거운 지난 여름날의 기억도 그 사건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해양경찰서 백색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외로운 발 한 짝이 주인을 찾은 것이다.
섭지코지 절벽에서 바다로 던져진 발은 몇십 킬로미터를, 해류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 해안가 용천수지대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피해자에게 미안했고 음료수를 보관하는 냉장고에 시신을 소중하게 보관한 해양경찰서 경찰에게 고마웠고 무엇보다 끈질긴 수사로 시체 없는 살인사건을 밝혀낸 서귀포경찰서 경찰에게 감사했다.
시체 없는 살인사건은 처벌하기 어렵다. 시체 없는 미제 살인사건이 종종 발생한다. 필자가 검사 시절 경찰서에 보관된 미제 살인사건 기록을 가지고 와 끙끙 앓으며 검토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약용의 흠흠신서(欽欽新書) 서(序)에는 “하늘이 사람을 내고 또 죽이니 인명은 하늘에 매여 있다.
사목(司牧, 지방관)은 또 그 사이에서 선량한 자는 보호하여 살게 하고, 죄 있는 자는 잡아서 죽이니 이는 명백한 천권(天權, 하늘의 권한)이다”라고 하여 살인사건을 다루는 일을 ‘하늘의 권한’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잊혔던 안타까운 기억을 계기로 살인사건 수사의 각별함을 다시금 새기며 유례없는 더위에도 묵묵히 강력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조기제 변호사 프로필>
- 서울 상문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사법고시 44회 합격
- 사법연수원 34기 수료
- 제주지방검찰청 검사
-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검사
- 창원지방검찰청 검사
- (현)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
- 세무사, 형사전문변호사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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