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만으론 한계 '통합 돌봄'이 미래 표준...병원 대신 가정이 진료실
의료법·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의료데이터활용 허용해야 디지털케어 가능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노인인구 1000만 시대’에 진입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65세 이상 인구는 1012만명으로, 전체 인구 5180만명의 약 5분의 1을 차지했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가 맞물리면서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노년 부양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구 구조 변화는 금융·의료·주거·유통·노동 등 산업 전반에 걸쳐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이제 시니어는 더 이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경제의 핵심 소비자이자 투자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노인 1000만 시대’ 시리즈를 통해 각 산업별 대응 전략과 새로운 성장 기회를 조망하고자 한다. 금융권의 시니어 자산 관리 경쟁, 의료·헬스케어 산업의 구조 변화, 실버타운과 도심형 요양시설 확산, 실버 소비층을 겨냥한 유통 혁신, 액티브 시니어의 재취업과 평생교육 확대까지 다각도로 분석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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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어제는 정형외과, 오늘은 신경외과, 내일은 내과.” 고령 환자들이 여러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병원 쇼핑’은 대한민국의 고령화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풍경이다. 치매, 관절염, 심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노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찾는다. 이 같은 폭발적인 의료 수요에 이제 ‘병원 수 늘리기’ 만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아직은 미미하지만 희망의 단초로 원격의료와 AI 진단, 재택 케어 같은 새로운 의료와 돌봄 모델이 모색되고 있다.
노인성 질환 폭증, 의료비 4년 새 39% 증가
1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1인당 연간 의료비는 전체 평균의 3배 이상이다. 고령층 진료비 총액은 2020년 37조원에서 2024년 52조 원으로 4년 만에 39% 급증했고, 전체 건강보험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6%에 달한다. 특히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받는 노인 수는 향후 10년간 두 자릿수 비율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요양병원과 요양원 중심의 의료·돌봄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 비용 부담을 완화하려면, 가정과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 돌봄’ 모델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원격의료·AI 진단, 국내기술 어디까지 진화 했나
과거 디지털 소외 계층으로 여겨졌던 고령층도 코로나19 이후 원격진료 경험이 크게 늘었다. 정부가 한시적으로 허용한 원격진료에서 60세 이상 환자 비중이 30%를 넘어선 것은 상징적이다.
원격의료는 이제 단순한 전화 상담이 아니다. AI 기반 영상·음성 분석, 웨어러블 모니터링 기술이 결합돼 환자의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한다. 특히 농어촌 등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노인들에게는 ‘병원 대신 데이터’가 곧 진단의 기준이 되고 있다.
업계는 2030년 AI 진단·모니터링 시장 규모가 10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기업들도 이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국내 스타트업 ‘메디컬AI’는 AiTiA LVSD(좌심실수축기능부전 선별) 소프트웨어를 통해 심부전 가능성을 위험도로 제시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6월부터 KMI 건강검진센터(서울, 부산, 제주 등 8개 지역)에 도입되어, 조기 심부전 선별에 실질적으로 활용 중이다.
또한 암 진단 및 치료 지원 AI를 개발한 루닛은 국내외 65개국 이상, 4800~6500곳 의료기관에서 사용 중으로 마이크로소프트(Azure)와 협업해 AI 모델을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공하며, 현지 데이터로 모델을 맞춤화하는 플랫폼 개발하고 있다.
치매·폐질환 진단 AI 솔루션을 보유한 뷰노는 80여 개 병원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알츠하이머 등 뇌질환 예측·진단에도 투입되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FDA 혁신의료기기 지정을 받았으며 심정지 예측 솔루션으로 미국 진출을 준비 중이다.
재택 케어, 요양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병원 쇼핑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해법은 재택 케어(Home Care)다. ICT 기반 원격 모니터링,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방문 재활·영양 관리를 결합해 노인이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전문적인 의료·돌봄을 받을 수 있는 기술적인 여건은 충분히 갖춰졌다.
현재 정부의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독거·취약계층 노인을 대상으로 식사·청소·말벗 지원과 건강 점검을 통합 제공한다. 2024년에는 월 평균 서비스 시간이 20시간 이상으로 확대되고, 전담 인력도 2400명 늘었다.
이에 민간 기업들은 AI스피커·IoT센서·웨어러블을 결합한 안전관리 솔루션을 내놓고, 보험사와 연계해 돌봄보험·건강보험 패키지를 출시하고 있다. 고령층 의료 수요가 산업 간 융합을 촉진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제약·보험·IT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토탈 헬스케어 플랫폼 구축도 한창이다.
실례로 SK C&C는 아모레퍼시픽, 종근당건강 등과 손잡고 웰니스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 플랫폼을 개발했다. 개인 건강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식품·운동·정신건강 콘텐츠를 제공하는 새로운 시도다. 대형 병원들도 AI 진단과 재활·건강관리 프로그램을 결합한 원스톱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금융권은 시니어 자산관리 상품을 헬스케어와 결합시고 있다. 생명보험사는 걷기·운동 기록을 보험료 할인에 반영하는 건강관리형 보험 상품을 확대하고, 손해보험사는 재택 케어와 연계된 간병·돌봄보험 패키지를 출시하는 식이다.
제도 정비와 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법적 틀을 그대로 두고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ICT를 활용한 시니어 의료·돌봄 산업이 성숙하려면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하다는 요구다. 먼저 원격의료 법제화, 건강 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 장기요양보험 재정 확충은 필수 과제다. 현재 한국의 원격진료는 ‘의료법’에 막혀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고 있고, AI·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은 ‘개인정보보호법’과 ‘의료법’의 엄격한 규제 탓에 비식별화된 데이터조차 활용하기 어렵다. 장기요양보험 역시 급격히 불어나는 수요에 비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의 재정 구조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의료법 개정을 통한 원격의료 허용 범위 확대 ▲개인정보보호법·의료법 개정을 통한 보건의료 빅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 및 보험료율 조정으로 재정 안정화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병원을 떠돌며 진료를 이어가는 노인들의 일상은 곧 한국 사회의 고령화 현실이다. 그러나 원격의료·AI 진단·재택 케어라는 새로운 해법이 확산된다면, 시니어들은 집에서도 안정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김수형 노년전문가(인하대 노인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시기를 통해 원격의료는 이미 고령층에게도 충분히 수용 가능한 서비스임이 입증됐다”라며 “더 이상 시범사업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법적 제도화를 통해 의료 접근성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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