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 해 주사 등 간호서비스 72만건 넘어...의료수요 가파르게 확대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 ·비용절감 필요, ‘방문 의사+상주 간호사 모델’ 주목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로 제작한 그림입니다. [일러스트=챗GPT]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챗GPT로 제작한 그림입니다. [일러스트=챗GPT]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지 2년째입니다. 큰 병은 아니지만 혈압이 자주 오르고, 도뇨관 교체나 수액 처치가 필요할 때마다 응급실을 찾아야 했습니다. 휠체어에 모시고, 대기 줄에 서 있는 동안 아버지는 불편해하셨고, 저 역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요양시설에 의사와 간호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 처치조차 할 수 없다는 현실, 많은 보호자들이 공감할 겁니다.”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신 가족들이라면 흔히 겪는 이 난관이 최근 제도 개선 논의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요양시설이 단순한 ‘생활 돌봄 공간’을 넘어 최소한의 의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2일 보건복지부의 의뢰를 받은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최근 공개한 ‘요양시설 내 적정 의료행위 범위 설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요양시설의 역할을 단순 ‘생활시설’에서 ‘의료기능이 강화된 돌봄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보고서의 핵심은 간단하다. 현재 법적으로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시설에서도 의사의 지휘·감독 아래 간호사가 일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도 변화가 정착되려면 반드시 선결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의료행위, 여전히 ‘금지된 영역’

현재 노인요양시설은 법적으로 의료기관이 아닌 복지시설이다. 시설에 간호사가 상주하더라도 수액 주사, 도뇨관 삽입, 혈액·소변 검사 같은 기본 의료행위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입소 어르신들은 가벼운 처치에도 병원을 오가야 하거나, 별도로 가정간호 서비스를 불러야 한다. 

실제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요양시설에서 이뤄진 가정간호 서비스는 약 72만7000 건, 전체의 62.3%를 차지했다. 그중 절반 가까이가 주사 행위였고(49.3%), 도뇨관 관리(13.5%), 비위관 삽입(8.8%)도 뒤를 이었다. 현장에서의 의료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요양시설의 인력 기반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난해 기준 전국 요양시설 중 간호사가 실제 근무하는 곳은 24.7%에 불과했다. 입소 정원 100명 이상 대형 요양원조차 34.1%에서 간호사가 전혀 없었고, 소규모 공동생활가정은 20곳 중 1곳 꼴(5.5%)만 간호사가 있었다.

요양시설 운영자와 계약 의사 다수는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운영자 80.3%, 계약 의사 61.8%가 “간호사에 의한 일부 처치 허용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간호사 의무 배치 필요성에도 운영자 69.5%, 계약 의사 75.4%가 동의했다.

해법은 ‘방문 의사+상주 간호사 모델’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방문 진료 의사’와 ‘숙련 간호사’의 협력 모델을 제시한다. 방문 의사가 시설 계약 의사로서 ‘간호 지시서’를 발급하면, 상주 간호사가 이를 근거로 간단한 처치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주사제 투여 ▲검체 채취 ▲도뇨관·비위관 삽입 등이 포함된다면 어르신들은 생활 공간에서 연속적인 건강관리를 받을 수 있다.

이 모델은 불필요한 응급실 방문과 비용을 줄이고, 무엇보다 어르신들의 불편을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전제 조건은 분명하다. 간호사 배치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법적·제도적 장치를 명확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준비 없는 확대는 위험...간호사 의무배치가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요양시설의 역할 확대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준비 없는 제도 변화는 오히려 혼란과 안전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요양시설 내 의료행위 확대가 진정으로 어르신과 가족들을 위한 제도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간호사 의무 배치와 시설 역량 강화라는 ‘기초 공사’부터 튼튼히 다져야 한다. 

보건학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의료와 복지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적 과제”로 본다. 이은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요양시설에서 의료행위를 확대하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준비가 부족하면 감염 관리나 법적 책임 문제 등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며 “간호 인력 확충과 교육, 시설별 안전 기준 마련이 먼저다”라고 강조했다.

노인복지학회 관계자도 “돌봄과 의료가 통합된 모델이야말로 고령사회의 해법”이라면서도 “제도화 과정에서 현장 간호사의 업무 과중과 책임 전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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