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반도체 기업 재정 지원엔 '찬성'...주 52시간 예외엔 '대립'
K칩스법 통과에도 반도체 특별법은 여야간 공방전으로 지지부진
"미국, 일본도 근로 시간 유연화 추세, 국내 반도체 업계도 참고해야"

반도체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반도체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뉴스퀘스트=황재희 기자】반도체 특별법이 '주 52시간 제외' 조항에 걸려 제자리 걸음을 하자 업계가 답답해 하고 있다.

AI(인공지능) 확산으로 반도체 시장 재편이 빨라지고 미국의 관세 압박과 보조금 지급 불확실성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시름하는 상황에서 해당 법안은 여야간 공방전에 막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미국, 대만, 일본 등 주요 경쟁국이 자국 반도체에 대한 전방위적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도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통해 우리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여야정은 국정협의회를 통해 반도체 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 등 현안 논의를 진행한다.

반도체 특별법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전력·용수 등 산업 인프라 공급, 미래 인재 육성, 보조금 지급 등의 재정적 지원을 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반도체산업 종사자 중 신기술 연구개발(R&D) 업무 종사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인 '주 52시간 근무' 적용에서 제외하는 조항(화이트칼라 이그젬션)도 포함돼있다. 

이에 따르면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자는 사측과의 서면 합의를 통해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대해 별도의 기준을 적용받게 된다.  필요 시 연장 근무나 야간 근무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야는 반도체 특별법 중 기업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의견 일치를 보고 있다. 반도체 기업에 대해 투자세액공제율을 현행보다 5%p(포인트)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K칩스법이 앞서 통과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 특별법은 재정 지원과 연관된 조항들에 대한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으로 인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당을 포함해 재계는 반도체 연구개발 근로자에 대한 주 52시간 규제를 풀어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방안에 찬성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산업 분야에서 기술 주도권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주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법 아래서는 기술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미중간 반도체 기술 패권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주요 경쟁국이 천문학적인 자금지원을 통해 각종 보조금과 세액 공제 등으로 자국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높이려면 기술 개발에 전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이 제도적으로 먼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게 업계의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AI 반도체로 시장이 급변하고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오로지 기술력 강화 밖에 없다"라며 "국내 반도체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조속한 입법을 통한 지원이 절실하다"라고 말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 역시 "대만 TSMC, 미국 엔비디아 등만 보더라도 반도체 기술 개발 직원들에게 주 52시간 제한을 하는 경우는 없다"라면서 "초 단위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과 연구개발 종사자의 특수한 업무 환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노동계는 주 52시간 적용 제외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미 현행법에 따른 특별연장근로제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오히려 주 52시간 적용으로 인해 반도체 연구개발 종사자들에게 무리한 근로시간을 법적으로 조장해 과도한 업무 부담으로 연결되고 노동 시간이 길어지게 되는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를 비롯한 신제품 개발과 연구개발 등 업무에 장기간 집중 근무가 필요할 경우 특별연장근로 같은 근로유연화 제도로는 현실적으로 활용도가 부족하다는 업계의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업계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와 일본의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사례를 참고해, 전문 분야에서 고연봉자를 받는 근로자에 한해서 특별히 근로시간 적용을 제외하는 방안이 국내에도 필요하다고 제기해왔다. 그 결과 이번 반도체 특별법에 주 52시간 적용 제외 조항이 포함된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부품산업이라 전적으로 고객사의 일정에 맞춘 기술개발이 필요하고 6개월, 1년 단위 프로젝트별로 단기간에 집중해 이뤄지는 경향이 크다"면서 "이런 업무 환경을 이해하지 않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연구개발 직종까지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건 글로벌 경영환경에 부합하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