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날씨
  • 서울
    B
    19.5℃
    미세먼지 보통
  • 경기
    B
    21.1℃
    미세먼지 보통
  • 인천
    B
    21.2℃
    미세먼지 보통
  • 광주
    B
    19.8℃
    미세먼지 보통
  • 대전
    B
    19.6℃
    미세먼지 좋음
  • 대구
    B
    18.1℃
    미세먼지 좋음
  • 울산
    B
    18.5℃
    미세먼지 좋음
  • 부산
    B
    18.5℃
    미세먼지 좋음
  • 강원
    B
    15.7℃
    미세먼지 좋음
  • 충북
    B
    20.7℃
    미세먼지 좋음
  • 충남
    B
    19.6℃
    미세먼지 보통
  • 전북
    B
    20.7℃
    미세먼지 보통
  • 전남
    B
    18.7℃
    미세먼지 보통
  • 경북
    B
    18.1℃
    미세먼지 좋음
  • 경남
    B
    19.2℃
    미세먼지 보통
  • 제주
    B
    18.8℃
    미세먼지 보통
  • 세종
    B
    19℃
    미세먼지 보통
최종편집 2020-05-29 18:00 (금)
기사 (47건)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무수히 많은 날을 전장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승패에 따라 의병들의 사기는 하늘과 땅을 오갔다.전투에서 승리한 날은 기쁨에 취해 들떠 있었고, 패배한 날은 자책하느라 풀이 꺾여 있었다. 그런 날이면 청 송의진 의병대장 심성지는 의병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수많은 의병 사이에 섞여 앉은 심성지는 주변을 살피고 돌연 운을 뗐다.의병의 강제해산, 노병의 눈물담에 올라 세 번 피로서 맹세를 밝히니 함께 나라 걱정하는 인심이 성을 이루었네오랑캐의 괴수가 감히 천지에 떨치니의리는 해와 별처럼 밝네죽는 것 역시 죽을 만한 일을 만나기 어렵고살아도 구차하게 살고자 할 것은 아니네밤낮으로 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하니어찌 계소를 얻어 왜적을 흩을까밝은 달이 즉석에서 칠언절구의 시를 읊는 심성지를 비추었다. 수많은 의병이 심성지의 시를 경청하는 한편, 일부는 꿈을 꾸듯 눈을 감았다.‘밤낮으로 나라를 회복하는 일을 곰곰이 생각하니’라는

문화일반 |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2020-02-15 06:55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참모로 임명된 심성지는 모집된 의병들을 훈련시키고, 군량미를 확보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2월 2일에는 참모와 서기 등 간부를 선출하였으며, 3일부터 청송 일대 청년들을 모집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면 서 주변의 사태를 살피는 한편, 기습의 기회를 노렸다.그 후 사병도총(司 兵都摠)까지 선임되어 의병에 합류하면서 심성지가 이끄는 청송의진은 완벽한 태세를 갖추어갔다.청송의병 연합부대를 이끌고그러나 같은 시기 청송지역에서 의병을 사칭하며 백성들을 현혹해 군량미를 공출하는 등 금전적 해를 가하는 일이 종종 발생하였다.국가와 의병을 위하는 민심을 악용한 사건에 대노한 심성지는 청송 인근에 방을 붙이고 의병들을 시켜 민심을 살피는데 주력하였다.이 와중에도 선봉장 홍병태(洪秉泰)와 함께 흥해(興海) 등지로 가서 의병을 모집하고 모량도감 (募粮都監)을 설치하고 각 문중에 할당하여 군량미를 모으는 등 의병장으로서 눈부신 활약을 이어갔다.그렇게

문화일반 |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2020-02-08 06:55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상여를 따라가던 아이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수 일 동안 어머니 주검을 지켰던 아홉 살 아이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짧은 울음을 토해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머니, 어찌 혼자 먼 길을 떠나십니까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자리를 보존하고 있었다. 아버지나 숙부의 타이름에도 꼼작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은 젊은 여인의 죽음보다, 어머니 없이 남겨진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을 훔쳤다.아이는 상복 소매로 눈물을 닦으면서 상여를 따라 갔다. 상여꾼에 둘러싸인 상여에 닿기 위해 아이는 손을 뻗고, 발꿈치를 들었다.한쪽 짚신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아이는 필사적으로 장례행렬을 따라갔다. 어머니를 부르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곡소리에 묻혀버렸다.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은 아홉 살의 심성지(沈誠之)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한 일이었다.어린 심성지는 그날부로 집상(執喪)에 들어갔다

문화일반 | 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 2020-02-01 06:45